일기장

2014.2.1

전길환 2014. 2. 1. 16:38

 대중교통관련 명절기간 비상근무관계로 사무실 출근을 하였다

먼저 고향소식을 접하고자 인터넷 전북신문을 본 다음 인천소식을 검색하다가 유투브에  들어가 흘러간 그 시절 노래를 들어본다.

 

정미조의 개여울,김종찬 산다는 것은과 김인순의 여고졸업반등을 두루 감상하면서 흘러간 만55년을 돌이켜본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 지난 거 같다, 어린시절 가난의 열등감으로 지루했던 날들, 군시절 사격땜에 고통받았던 시간들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지만 그 시간 이후는 보편적으로 무난히 스치는 일기인 거 같다.

 

초등시절은 우등생이 되고 싶었지만 6년 전체적인 우등생이 되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았고 중학은 뭔가 하려고 노력하는 중간 5%권까지 가다가 가정의 부채보증 및 아버님의 형사고발사건땜에 중간포기하고 명절 때 고향에 내려온 친구따라 서울에 가서 직장을 구하려고 보자기를 챙기고 풀기를 몇번 되풀이하다가 고교를 가게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고창읍내 월산에 사시는 고모님댁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고창고를 가라는 고모님 제의와 아버님의견이 있었지만, 여러 생각 끝에 집에서 영선고 농업과를 가기로 했다

농업과는 보편적으로 공부를 싫어하는 친구 또는 농업이 활발한 농촌생활에 졸업 후 농업을 이어받을 친구들이다. 본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뒤진 친구들도 인문계를 갔으나 나름대로 판단하여 농업과를 선택 동기는 장학생제도가 많다하여 자신의 힘으로 졸업장을 취득하여 사회에 진출하는 게 목적이었다

 

고교학창시절 가정사건으로 공부를 그만 둘 생각을 수십번, 그러다가 학교를 장기간 결석하기도 한 거 같다. 본인은 몰랐는데 졸업 후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몇이서 집에까지 결석사유와 등교를 권유하기 위해서 왔다 한다 . 그렇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사립학교의 새로운 이사장님(교장선생님 모친)과 전북대 교수이었던 교장선생님(이사장님 아들)이 취임하시어 취업반, 운전반, 진학반을 편성 운영하시었다

 

본인은 이웃마을 조카벌 반 친구가 공부하던 1권으로 편성된 공무원참고서를 빌려 2회정도 읽어 본 다음 시험에 응시하였는데 합격을 하였다

그렇지만 합격발표를 앞두고 하계방학동안 취업을 하여 돈을 버는 시간인지라 십여명 응시한 가운데 여학생과 둘이서 합경을 하였는데 면접 당일 여자친구가 하는데로 서류를 준비하여 갔다가 면접에 응시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남자는 병역사항이 기재된 주민등록초본, 여자는 주민등록등본이었다

 

그런 아픈감정을 함께하면서 졸업을 하고 인천 남구 도화동에 있는 도란 도란 경양식집에 보름여동안 돈을 벌면서  머무르는데 시골아버님으로부터 고시원으로 2월에 시험일정이 있다고 안내서를 붙여왔다

대략 3일 후 다음 일할자를 구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촌지도직시험에 응시 합격을 하여 그동안 아픔을 다 잊었다

농촌지도직 70여일 근무하다보니 지역에서 인기도가 낮고 전망이 어두워 근무하는 중 다시 5급 농림직에 함격하여 면사무소 발령을 받았다

군대 가기 전날 오전까지 근무했었고, 제대후엔 제대날 오후부터 예비군 차림으로 근무를 하였다

 

과거의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성공해야한다는 희망과 의욕은 남 달랐다

이 고장의 면장, 아니 그 이상 꼬옥 해야한다는 의욕이 있었다

그러기에 공직생활 35년째가 다 되는 싯점에서 새해를 맞는 금년은 좀 다르다. 뭔가 최선을 다하면서 마지막까지 승진을 위하여 기다리느냐, 아니면 구청으로 내려가 동장하면서 마무리 하는냐 심중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었다

무엇이 올바른 판단이느냐는 정년 후에서야 알겠지만 미리 예측하여 좀 더 활발하고 의미에 남는 생황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