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19년6월까지 근무했던 인천광역시청에 업무가 있어 잠시 들렸다가 모교인 방통대를 지나치면서 추억을 남겼습니다.엊그제까지 근무한 것 같은데 벌써 정년퇴직 만 4년이 지났습니다.당초부터 인천에서 출발했더라면 최고위직까지 도착했을턴데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전북 고창군청에서 15년동안 근무하는 중 본인 야간대학 및 자녀들 학업문제로 왔기에 승진은 어려웠지만 주야간 최선을 다했고 근무하는 중 7급 때 승진을 위하여 구청장면담, 인천광역시청에서는 5급사무관 때 결정력을 좌우하는 관계자에게 편지 쓰기와 행정부시장을 만나 승진해야겠다 설명을 나열하기도 했지만 너무 늦게 인천에 도착했고, 도시평창화로 승진이 급속도로 빨리 진행된 동료들과 경쟁에서 선두를 선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정년 2년여 못 남기고 승진 희망을 접고 집 근처로 희망하여 사업소에서 근무를 마치게 되었습니다.승진도 좋지만 39년여 공직기간 동안 금품수수와 이권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음을 명예스럽게 큰 자산으로 여기며, 역지사지란 용어처럼 상대방 입장에서 전국 최초로 일할만큼 여러 선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8억여원 세금부과 취소할 때는 25명 중 모두가 반대했지만 조세법령 주의에서 잘못된 법이라도 따라한다는 입장아래 부과취소를 한 후 중앙 감사부서 감사 등 있었지만 지적되지 않았습니다.공무원 초창기에는 극빈 노령자분에게 아들이 호적상 있더라도 전혀 부모님과 거래가 없을 때 사실확인서 기록하여 생활보호대상자에 선정도 했고 매사 이웃을 위한 친절행정을 했다 자신있게 말합니다.흘러간 세월들이지만 순간 순간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가, 국민이 있기에 공직자가 있다 그러면 상대편 입장에서 무조건 해야한다는 솔선수범행정였습니다.무리한 추진으로 신분상 책임을 지고 옷 벗을뻔도 했지만 여러 이웃들의 도움으로 무난히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어 만 39년 무사고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있어 거리를 지나칠 때도 어려운 이웃,불편시설물을 유심히 보고 기록하여 안전신문고나 행정기관에 알려 조치하며 여러 이웃이 함께 안녕을 누리도록 관심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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